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마이클 잭슨 (문단 편집) == [[마이클 잭슨/콘서트|콘서트]] == [include(틀:상세 내용, 문서명=마이클 잭슨/콘서트)] || [[파일:external/blogfiles.naver.net/%B8%B6%C0%CC%C5%AC_%C0%E8%BD%BC_%BF%F9%B5%E5%C5%F5%BE%EE.jpg|width=100%]] || || 마이클 잭슨이 월드투어를 진행한 곳을 표시한 지도. || [[파일:external/3.bp.blogspot.com/tour_dangerous_toaster.jpg]] 마이클 잭슨 [[Dangerous]] 투어의 시작을 알리는 부분. 일명 토스터 기법으로 많은 가수들이 공연에서 채용하고 있다. 잭슨은 자신의 생애에서 총 15번의 투어[* 그런데 솔로투어를 보통 10회 전후, 많으면 20회 가까이 가는 다른 아티스들과는 다르게 3번밖에 안했다.]에 900회에 가까운 공연을 했지만 이에 비해 '''정작 제대로 된 화질과 음질로 남아있는 동영상은 거의 없다.''' 투어는 아니지만 탤런트 쇼나 스크립트 공연에서 노래를 부른 것만 합치면 횟수는 훨씬 늘어날 것이다. [[1984년]] 잭슨스 (잭슨 파이브는 잭슨스로 이름을 바꿈.)의 일원으로 빅토리 투어를 하였는데 가는 곳마다 사람이 엄청나게 몰렸다고 한다. 당시가 '''[[Thriller]] 열풍'''으로 [[대중음악]] 역사상 가장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마이클 잭슨이 '''투어를 한다는 소식은 순식간에 미국 전역에 퍼지게 되었다.''' 별로 공연하지도 않았는데 80년대 가장 좋은 수익을 거둔 투어 7위를 기록한다. 1987부터 1989년까지 1년4개월간 그의 첫 솔로 투어인 [[Bad]] 월드 투어가 열렸다. 123회 공연으로 440만 명의 관중들을 불러왔고 영국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7회 연속 매진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50만 4천 명의 관중들과 만났다. 배드 투어는 일본을 시작으로 열렸는데 일본에서 당시 잭슨의 공연 표가 매진되는 건 당연하고 [[암표]]가 횡행하여 암표상들이 엄청난 돈을 벌었다고 한다. 배드 투어의 라이브 영상으로는 2012년 발매된 영국 웸블리 공연 DVD가 있다. 1억 2천 5백만 달러[* 현재기준으로 1달러를 1100원으로 환산할시 1375억.]를 벌어들여 80년대 가장 좋은 성적을 거둔 투어 2위 솔로 가수로는 1위를 기록했다. 또, 당시 관객들이 잭슨의 공연을 보고 기절하고 부상당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사태는 데인저러스 투어도 마찬가지. 뉴스 보도에 의하면 공연을 열 때마다 3천 명씩 실신해서 실려 갔다고 한다. 1992-1993년에는 [[Dangerous]] 월드 투어가 열렸다 마이클 잭슨의 진통제 중독으로 후반부 스케줄이 취소되어 총 69회의 공연으로 350만 명의 관중들과 만났다. 이전 투어와는 달리 퍼포먼스가 더 과감해졌다.[* 비록 그 때문에 마이클의 진통제 중독으로 후반기에 공연이 중단되었지만.] 데인저러스 투어의 라이브 영상으로는 [[루마니아]] [[부쿠레슈티]] 공연이 2005년 DVD로 발매됐다. 1996년 7월 16일 히스토리 투어 시작전에 브루나이에서 브루나이 국왕의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Royal Brunei 공연을 개최하여 6만 명의 관중을 무료로 받았다. 내용적으로 보면 시작은 데인저러스 투어로 하는데 끝은 히스토리 투어로 끝나는 공연이다. 1996-1997년에는 [[HIStory]] 월드 투어가 열린다. 35개국 82회 공연 450만 명의 관중들과 만났다. '''이때 처음으로 [[대한민국|우리나라]]에서도 공연을 했다.''' 마이클 잭슨은 1993년 Dangerous 투어 당시에도 우리나라에 오려고 한 적이 있는데 '''[[김영삼]] 정부는 근검절약 분위기에 맞지 않다고 거절한 바 있었고 이번에도 좌절되는가 싶더니 겨우 겨우 공연이 성사됐다.''' 하지만 반미 반외세를 외치는 [[종북]]세력들과 [[개독교]] [[먹사]]들 및 외세문화를 거부하는 당시의 수구보수세력이 주축이 되어 마이클 잭슨 공연 반대 대책위가 꾸려지고 잭슨 내한 공연 반대 운동이 매우 격렬하게 펼쳐졌다.[* [[사탄은 마침내 대중문화를 선택했습니다]]라는 저서에서 보듯 개신교 단체 중에는 대중문화에 적대적인 이들이 꽤 있다.] 심지어는 공연 반대 대책 위원회에서 마이클 잭슨측과 계약을 하고 표를 판매하기로 한 태원예능에게 [[서점]]들과 [[은행]] 등에서 표를 판매할 경우 해당 서점과 은행의 불매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협박했고 태원예능은 협박에 굴복, 표 판매를 철회하고 전 직원들이 동원되어 밤낮으로 돌아다니며 수작업으로 표를 판매했다고 한다. 더욱이 공연 퍼포먼스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심의위원회]]에서 [[19금]] 이상의 성인용으로 처리되었고 덕분에 표 판매는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기사를 보면 매진에는 실패했고 관객의 70% 가까이를 채우는데 성공했다고 한다. '''2회 동안의 총 관중 수는 9만 명'''이었으며 이는 2017년 [[현대카드 슈퍼콘서트 22 콜드플레이|콜드플레이 내한공연]]때까지 최고기록이었다. 총 2회 공연 중 두 번째 공연은 매진을 기록했다. 근데 7만 8천명도 당시 [[잠실 주 경기장]]의 다른 행사의 입장 인원을 생각해 보면 꽤 많이 들어온 거다. 공연이 끝나고 태원예능의 사장님인 정광택씨가 당시 겪은 일을 바탕으로 '마이클 잭슨이 어쨌다구요?' 라는 책을 쓴 바 있다. 현재는 절판되어 사지는 못 하고 도서관에서 빌려볼 수 있다. 정광택씨는 책 뒷면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정부가 허가한 공연의 표도 못 팔게 한 나라가 이 지구상 어디에 있습니까?"''' [youtube(1hHXCIBEnWs)] 1999년에 방영된 'Michael Jackson & Friends'라는 이 자선공연이 우리나라 [[서울]]과 [[독일]] [[뮌헨]]에서 열렸다. [[SBS]]에서 서울 공연을 생중계 해줬는데 이 콘서트의 순간'''시청률이 최고 42.3%였다.''' 2001년에는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마이클 잭슨 30주년 기념공연을 했다. 이때 You Rock My World를 공연할 때 [[어셔]]와 [[크리스 터커]]가 출연하여 함께 공연했다. 또한 [[휘트니 휴스턴]] 역시 참가하여 공연했다. 말년에 있던 솔로 투어에서 [[립싱크]]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는데, 히스토리 투어 당시 1-2곡을 제외한 모든 노래를 립싱크 처리했기 때문이다. 마이클 잭슨의 댄스는 상당한 테크닉이 필요로 하여 체력 소모가 심하다. 거기다 마이클은 통증까지 앓고 있어 데인저러스 투어부터는 진통제를 맞아가며 버텨왔지만 1993년 재판 이후 급속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아지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불면증 거기다 목 상태도 나빠져 히스토리 투어부터는 립싱크 없이는 공연을 할 수가 없었다. 거기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서는 가장 최근 시기에 있던 히스토리 투어의 동영상만 많이 풀렸지 그 이전인 데인저러스나 배드 투어는 거의 없어 일부 유출된 소수의 영상과 잭슨 5 시절 공연 영상 밖에 없어 배드 투어를 라이브 앨범으로 발매하라는 요구가 많았는데 마이클 의 사망 3년 이후인 2012년 웸블리 투어 영상이 공개되면서 팬들의 숙원이 어느 정도 풀렸으나 아직도 풀어야 할 라이브 동영상은 많이 남아 있다. 그래서 일부 극성팬들은 해킹을 해가며 투어 동영상을 야금야금 빼오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야 몇 개의 불법적인 공연 동영상이 유출돼 볼 거리가 더 많아진 것이다. 하지만 음질 리마스터나 화질의 개선없이 단지 빼오기만 했을 뿐이라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이클은 빡빡한 월드 투어 일정에 대해서 힘겨워했으며 "투어는 나에게서 많은 것을 가져간다. 한 번 공연을 하고 나면 무대가 땀으로 가득 차고 몸무게가 500g이 빠져 나간다."라고 말했다.[* 대충 따져도 1시간 30분~2시간 내내 쉴새없이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야 하기 때문에 사실상 격한 운동을 하는것이나 다름이 없다. 더군다나 공연과 음악만큼은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였던 마이클 잭슨은 라이브 공연에 앞서 반드시 미리 리허설 작업까지 몇차례 거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리허설 작업까지 포함하면 더 지칠 수밖에 없다.] Invincible 앨범 발매 당시 월드 투어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것도 더 이상 과중한 일정을 소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를 넘나들며 시차 적응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다가 공연이 끝나면 흥분 상태에서 잠을 이루지 못 하고, 잠을 못 잔 상태에서 다시 무대에 서야 하니 늘 피로한 상태였다고 한다. 거기에다 2시간 동안 움직이며 노래를 부르는 것은 아무리 뛰어난 테크닉의 마이클 잭슨도 어지간한 일이 아니었을 거다. 이렇게 젊은 시절 수없이 춤을 추며 연습하고 몸을 혹사시키다보니 목, 허리, 특히 발목이 남아나지 않았다고 하는데 [[마이클 잭슨의 디스 이즈 잇|This is it]] 콘서트를 준비하던 당시 지인에게 몸이 마음같지 않다며 예전만큼 춤출 수 없을 것 같다는 부담감을 드러내기도 했다고 한다. 마이클 잭슨이 성인이 되어 참가한 Victory World Tour, [[Bad]] World Tour, [[Dangerous]] World Tour, [[HIStory]] World Tour의 총 관중수를 합치면 1,440만 명에 달한다. 거기에다가 로얄 브루나이 공연[* 1996년 브루나이 국왕의 5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기념공연. 6만 명의 관중을 무료로 받았다.]의 60,000명을 더하면 '''1,446만 명'''이 된다.[* 이것도 잭슨스 시절에 진행된 트리이엄프 투어 등이 제외 된 것이다.] 말이 1,446만 명이지 이는 엄청나게 많은 수인데 [[피파 월드컵]] 중 최다 관중인 3,587,538명을 동원한 1994년 '''[[미국 월드컵]]의 관중 수에 4배를 곱해도 마이클 잭슨의 월드 투어 관객수보다 작다.''' 즉 평균 관중이 68,991명이었던 미국 월드컵 '''경기를 108'''번 해도 1,446만 명이 안 된다는 의미이다. '''이는 그 어떤 아티스트의 관중 동원 기록보다도 압도적인 수치이다.'''[* 솔로 아티스트로서는 최고 기록이며 그룹인 [[U2]], [[롤링 스톤즈]] 다음으로 많은 관중을 동원했다..] 또한 마이클은 투어 때마다 어마어마한 양의 돈을 끌어모았는데[* Bad World Tour, Dangerous World Tour, HIStory World Tour의 합산 수익금 총합은 3억 9,000만 달러로 1달러를 1,100원으로 칠 경우 4,290억 원이다. 그런데 저 수익금들을 2015년 기준으로 환산하여 계산할 경우 6억 4,600만 달러로 7,106억 원이 된다. 위키피디아의 투어 항목을 참조.] 아무런 계산없이 합쳐도 3번의 투어 평균수익이 1억 3천만 달러이고 과거와 현재의 차이를 고려하여 계산하면 3번의 투어 동안 평균수익이 2억 1,500만 달러에 달한다. 투어횟수 자체가 적다는것과 21세기 들어서 투어를 한 적이 없다는 점 때문인지[* [[Invincible]] 투어는 마이클이 극구 거부해서 취소되었다. 또한 This Is It 투어도 6월 25일에 갑작스럽게 사망하면서 취소되었다.] 총관중 총합과 수익총합 순위에서 밀려났다.[* 그런데 투어를 4번밖에 안 했음에도 10회 전후를 진행한 다른 아티스트들과 비슷하다.] 또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할 수 있는 미국 본토[* 보통 다른 아티스트들이 투어를 진행할 때는 미국에서만 공연의 40%를 진행한다.]를 데인저러스 투어 때부터 제외하기 시작했는데 투어의 흥행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다. 이는 마이클 잭슨의 관중 동원 능력이 매우 강력하고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졌기 때문에 유럽이나 아시아, 남미를 대상으로 투어를 해도 항상 전석 매진이었기 때문이다. 마이클이 매진을 기록하지 못한 대표적인 공연은 1996년 서울에서 열린 히스토리 투어인데 이때 18만 명 중에 90,000명만 입장했는데도 한국에서는 2017년 콜드플레이 내한공연 당시 99,837명으로 기록이 깨지기 전까지 1위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